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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티아고순례길] Day34. 팔라스데레이에서 아르수아까지. 멜리데에서 사람들이 극찬하는 문어요리 먹어보기.
    스페인 2024. 9. 9. 20:00

    팔라스데레이(Palas de Rei) -> 멜리데(Melide) -> 아르수아(Arzua) 약 26 km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해서 그런지,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주변이 어두웠다. 아침 열 시에 일행들과 만나 열려있는 식당으로 가서 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열한 시쯤 돼서야 출발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출발한 건 순례길 통틀어 이날이 처음이었다. 

    팔라스데레이 마을이 작은 편이어서 조금 걷자 금방 숲길이 나왔다. 이날은 멜리데 도시를 지나갈 때 외에는 거의 대부분이 숲 속 오솔길을 걷는 일정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출발할 때부터 우비를 입고 출발했다. 공기가 촉촉해서 좋았는데 하늘이 조금 어둡고 비가 내려서 살짝 우중충한 날이었다. 

    숲 속 오솔길로 진입해서 계속 걷는다. 주변이 조용~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내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일행들 걷는 속도가 나보다 빨라서 벌써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아주 작은 성당이 짠 하고 나타나길래 궁금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굉장히 조용하고 작고 아늑한 성당이었다. 건물이 많이 낡기는 했으나 꽃 장식 등으로 보아서 분명히 주변에 사시는 마을분들이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계신 듯했다. 

    성당 내부를 잠시 구경하고, 몇 유로를 기부한 뒤 촛불에 불 붙이고 짧막하게 기도를 했다. '앞으로 산티아고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세요.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중도포기 할 뻔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올렸다.

    종교는 딱히 없는데, 조용한 곳에서 기도를 하면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해져서 좋은 것 같다. 

    잠깐 기도하고 둘러보고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 보니 관리인 할아버지께서 나와 계셨다. 아마 마을 주민분이신 듯했다. 어디서 왔냐, 어디까지 가냐, 등등 짧은 스페인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는데 인상이 온화하고 좋으신 분이셨다.

    성당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고, 관리인 할아버지 사진도 한 장 찍어드렸다. 이 마을 이성당에 내가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이 시간은 지금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시간이든, 장소이든, 사람이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그 느낌이란.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드린 후 성당에서 나와 다시 걸었다. 몇 분정도의 정말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숲속 오솔길을 걷는다. 내 앞에 모르는 다른 순례객이 한 명 보였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먼발치 앞에 누군가 보인다는 것이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이날은 하루종일 계속 추적추적 비가 꽤 내렸다.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숲속 길에서 무서운 호랑이가 나오는데,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동화에서는 굶주린 늑대 무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괜스레 바닥에 떨어진 가을낙엽도 한번 찍어보고..! 

    나무들도 울창하고, 이끼도 많고.. 무엇보다 조용~~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이 조용한 정적, 고독,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작은 개울 위로 난 다리를 넘어가니 멜리데 도시가 나오기 시작했다. 순례길 초반에 만났던 다른 순례객이 자기는 예전에 한번 이 순례길을 걸은 적 있는데, 멜리데에서 먹었던 문어숙회요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이번에도 꼭 가서 먹을 예정이라고 극찬을 한 적이 있었다.

    멜리데 이야기를 하는 순례객들마다 하나같이 모두 입을 모아 문어요리 이야기를 하길래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 호들갑인지 정말 궁금해져서 한번 나도 가서 먹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해물탕 집 이런식으로 카테고리가 있듯이 스페인도 이 문어숙회 요리를 전문으로 파는 곳을 뿔뻬리아(=Pulperia)라고 부른다. 빵을 파는 베이커리는 빠나데리아, 커피 파는 곳은 카페테리아, 추로스 파는 곳은 츄레리아, 문어가 스페인어로 뿔뽀이기 때문에 문어 파는 곳은 뿔뻬리아~! 가게 전면 통유리에 커다란 문어를 찌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어~ 어딘지 맛있는 고소한 냄새가 난다~ 하면 가게 근처에 다 온 것!

    가장 유명하다는 이지키엘(=Exequiel)로 방문했는데, 이날은 비가 추적추적 오고 평일 오후이어서 그런지 어느정도 자리가 남아있었다. 메뉴판에는 다른 요리들도 있었는데, 혼자여서 여러 개 시키면 다 못 먹을 것 같아 유명한 문어요리 뿔뽀 한접시랑 콜라만 시켰다. 

    배고플 땐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한 20분쯤 후에 올리브 유와 파프리카 가루가 뿌려진 문어숙회 요리가 나와서 눈을 빤짝이며 하나 콕 찍어 입에 왕 넣어 먹었는데... 아아......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싶었다. 문어가 맛이 있기는 한데, 쪼금 질기고, 조금 짰다. 조금 아쉬웠다.

    아마도 생선구이, 해물탕, 회, 각종 숙회 해물찜 등 해산물 요리가 굉장히 발달하고 해산물 요리를 자주 즐겨 먹는 한국사람 입장에서 평가해서 그런 듯 싶다. 이미 한국사람들은 해산물을 즐겨먹다보니 맛있는 해산물 요리에 대한 기준치가 엄청 높을 수밖에 없다.

    빵,감자, 밀가루, 고기가 주식이고 디저트를 즐겨먹는 서양 국가 사람들 입장에서 빵과 디저트, 스테이크 등에 대한 평가의 기준치가 매우 높듯이 말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한국 사람들이 1인당 수산물 소비량으로 볼 때 전 세계 1위라고 한다 ~!!)

    아마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영국이나 독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사실 이런 해산물 요리나 문어요리 등 해산물 요리가 가격도 비싸고 파는 곳도 많이 없어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스페인에 오면 먹을 수 있는 해산물 요리가 특별한 별미로 칭송받는 이유가 아닐까?

    하여튼, 뿔뻬리아는 혼자 가는 것보다는 여럿이 가서 이것저것 시켜놓고 같이 나눠먹자! 그리고 가격에 비해서 양이 조금 적은 듯했는데, 아무래도 맥주, 감자튀김 등 시켜서 같이 안주로 먹는 개념이어서 그런 듯 싶다.

    문어만 시키면 아쉬우니 다른 것도 한두개 곁들이면 훌륭한 식사가 될 듯하다. 푸짐한 한국 해산물 요리를 먹다 유럽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으니 뭔가 아쉬운 이 기분~ (한국 해산물 요리 최고!)

    문어를 다 먹고 계산한 후 밖으로 나오니, 식당에 들어가기 이전보다 빗줄기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금방 약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가는 길에 성당에 들려서 잠시 쉬었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조용한 숲 속 길을 혼자 계~속 걸으며 자연을 즐기다 멜리데 도시를 거쳐가니, 멜리데가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님에도 차, 사람들, 건물들을 보자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아.. 복잡하다... 비도 내리고... 춥고.. 쉬고 싶다... 걷기 싫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성당이 앞에 짠~ 하고 나타났다. 아 쉬어갈 수 있겠다. 감사하다. 

    성당 안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무생각 없이 조용히 한 십오 분 정도 앉아있으면서 비가 그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 걷고 여기 멜리데에서 하룻밤 쉬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 주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 가족을 만나기로 약속해 놓은 것이 있어서 멜리데에서 쉬어가면 하루가 밀리기 때문에 이날 가기로 정해놓은 아르수아까지 더 걸어야 했다.

    친구랑만 한 약속이면 어떻게 다시 조율해 볼 텐데, 친구가 친구 부모님한테까지 미리 말해놓은 상태여서 변경하기가 어려웠다. 약속이 야속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지 내가 한 약속인걸~ 아 조금만 더 넉넉하게 약속 잡을걸 !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30일 정도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중간에 피곤하고 힘들어서 일정보다 줄여서 조금만 걷거나, 며칠 쉬거나 한 날들이 쌓이다 보니 30일도 넉넉지 않았다. 순례 앞 뒤 일정을 너무 빡빡하지 않도록, 앞뒤로 일이 주 정도 여유 있게  잡기를 꼭 추천드린다!) 

    조금 쉬고 난 후 성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성당이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아도 나름 아름답고 조용한 성당이었다. 

    잘 쉬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현관 쪽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는 길에 벽 한쪽에 각종 정보 팸플릿과 야고보 상 그림이 붙어있길래 한 장 찍어보았다. 성 야고보는 정말 이렇게 생겼었을까? 궁금하다. 실존 인물인 것 같은데, 그 시대로 돌아가서 만나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 옛날 그 긴 거리를 걸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고, 먹을거리나 깨끗하게 씻을 곳, 안전하게 잠잘 곳 찾기가 더 힘들었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기도, 상하수도 시설도, 샴푸나 비누, 따뜻한 물을 데울 난방 등도 없던 아주 먼 옛날. 말을 타고 기사들이 있고, 그래도 평등과 천부인권을 세운 지금과 다르게 귀족과 왕 등 계급이 너무 뚜렷했을 저 먼 옛날 시절. 

    앞으로 한 천년 후 인간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천년 후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모습을 보면서.. 아아 지금 참 좋은 시절. 로봇이 전부 다 일해주는데 저때는 인간이 다 일했구나. 저 때는 참 힘들었겠다~ 이런 생각을 똑같이 하려나?? 타임머신이 있다면 정말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왔다 갔다 거리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궁금하다. 

    멜리데를 빠져나오니 다시 숲길이다. 

    이날은 거의 정말 이런 숲 속 오솔길이 대부분이라 조용하게 명상하기 좋은 날이었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성당에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한 지 한 삼십 분 정도 지나자 다소 잦아들었다. 

    이런 숲 속의 작은 개울들도 많이 지났다. 

    오후의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나마 비는 그쳐서 다행이었는데, 이날은 참 걷기가 싫었다. 멜리데에서 쉬고 싶었는데 억지로 걸어서 그랬나 보다. 

    그때쯤 작은 성당이 짠 하고 다시 나타나서 잠깐 쉴 겸 들어가 보았다. 미사보는 내부는 유리로 둘러져 있었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바깥에서 유리문으로 잠시 구경만 할 수 있었다. 

    성당 벽 한쪽의 허름한 모자상이 뭔가 마음에 들어 한 장 찍어보았다. 잠시 쉬어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기도하고 주머니에 들어있던 3~4유로를 기부하고 나왔다. 

    비슷한 숲 속의 오솔길이 계속 나왔다. 이날은 어쩌다보니 성당을 세 군데나 들리고 중간에 멜리데에서 문어요리를 먹으면서 쉬어서 오후가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성당을 세 군데나 들린 날은 순례길 통틀어 이날이 처음이었다. 

     점점 해가 지고 석양이 드리우며 어두워지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아르수아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일곱 시이었다. 마을 거리는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호텔인 줄 알았는데, 가보니 에어비앤비처럼 가정집 하나를 빌려 쓰는 형태였다. 이날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긴 시간을 걷느라 많이 피곤했는데, 다행히 호스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했다.

    방은 1층이고 방에 있는 창문을 열면 벽이 나오는 형태라 뷰는 조금 답답했지만, 아주머니께서 신경 써주셔서 방도 어느 정도 따뜻하게 난방이 데워져 있었고,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도 잘 나와서 뜨거운 물로 씻고 누우니 이제야 뭔가 쉬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날은 너무 피곤해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서 미리 사두었던 빵과 시리얼로 저녁식사를 대충 때우고 침대에 누웠다. 아침부터 거의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추운 날씨 속에 혼자 숲 속길을 걸어서 그런지, 아니면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지, 이제 정말 산티아고가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 가을이라 그런가... 갑자기 늦가을 타는 건가.... 산티아고 도착하면 마냥 신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런 싱숭생숭한 마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기분을 맞닥뜨린 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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