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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Day29. 2편. 신비로운 느낌의 오세브레이로 마을에서 하루밤. 성당에서의 뜻깊은 저녁미사.스페인 2024. 5. 12. 01:27
29일째. 앞 포스팅에서 말한 대로 2편으로 나누어 씁니다.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두었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완전히 돌로 지어진 중세 느낌의 집이었는데, 11월 중순이라 낮인데도 실내 전체에 냉기가 감돌았다.
오세브레이로는 매우 신비로운 느낌의 마을이었다. 누군가 내게 뭐라고 귀띔해 준 적도 말해준 적도 어디서 읽은 적도 없는데, 이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어떤 신비롭고 상서로운 기운을 느꼈다. 이곳이 꽤나 높은 고도에 위치한 산속의 마을이기 때문일까?
피터와 저녁 미사때 성당 앞에서 보기로 하여,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딱히 할 일도 없어 저녁 미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성당에 갔다.
오세브레이로 성당은 거대하여 위엄 있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는데 무언가 은둔의 고수 같은 포스가 풍기는 성당이었다.
성당 입구에 방명록이 있길래 방명록에 소감 한마디 적었다.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이제 갈리시아 지방에 진입하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정말 며칠 안 남은 상태.
성당을 둘러보는데, 성당 안에서 피터를 만났다. 성당 안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힌 성경이 있었는데, 피터는 그 앞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피터는 순례길 중반에 만난 한국 친구로, 성실하고 착한 카톨릭 신자 청년이었는데, 내게는 천사(?)나 다름없었던 존재.
피터가 나를 인도해준(?) 덕분에 오르니요스 마을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로 카레를 먹고 그 다음날 너무 무리하게 걸어서 아팠던 다리와 무릎이 씻은 듯이 나아 그날 이후부터 무사히 산티아고까지 일정을 끝마쳤으니, 피터는 하늘이 내게 보내 준 천사같은 친구였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힌 성경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 신기했다. 세상에 참 많은 언어가 있구나. 참 많은 국가가 있구나. 그런데 이렇게 하나로 이어져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별 생각 없이 찍었는데, 저 단 위에 붉은 상자 (?)에 모셔져 있는 것이 오세브레이로 성당에 모셔져 있는 성체라 한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정말 신기했다.
오 세브레이로에서 일어난 기적은 까미노 순례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날이 궂은 어느 날 한 순례자가 마을에 도착하여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할 것이라고 하자 순례자는 기도를 올리며 성체의 신비가 실제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하늘에 성체를 바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는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있었고, 성배에는 포도주가 피로 변하여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와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주전자와 은으로 만든 유물함을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욕심 많고 고집 센 이사벨 여왕은 기적의 성배와 성체를 담은 접시를 탐냈습니다. 여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은 성배를 바쳐야 했는데, 성배를 등에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배는 다시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 안에서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aminocorea.org/?page_id=1666아직 미사 전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소박하지만 경건하고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성당이었다.
성당 입구에는 아름다운 일러스트 데코레이션 아크가 그려진 기도문구 엽서 꾸러미 함이 언어별로 있었고, 그 옆에 기부함이 놓여져 있었는데, 엽서 장당 한 1.5유로 ~2유로 정도 기부하면 되는 식이었다.
나는 이곳 성당이 잘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만원 정도 기부를 한 후 마음에 드는 엽서 두 장을 가져왔다. 위 사진 속의 엽서들이다. 한 장은 영어 기도문으로 골랐고 한 장은 프랑스어 기도문구로 골랐다.
피터도 내 옆에 있었는데, 피터도 분명 옆서를 가져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망설이길래 피터에게 내가 몇만 원 정도 기부했으니 피터 너도 가져가도 된다 맘에 드는 것 있으면 가져가라 말하니 피터도 두 장 정도를 골랐다.
우리가 엽서랑 기부함 앞에서 엽서를 고르며 대화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신부님이 홀연히 나타나셨다. 약간 내성적 느낌(?)이 나시는 신부님이셨다. 아직 미사 한참 전인데 입구에서 두런두런 대화소리가 나니 사무실에서 입구로 나오신 모양이었다. 신부님 나오시기 전에 기부 했으니 당당히 엽서를 골랐다 ㅋㅋㅋ
엽서 고른 후 피터가 신부님이랑 대화를 몇 마디 나누었는데, 피터가 신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하여 신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후 성당을 계속 구경했는데 벽 한쪽에 있는 성모상도 정말 평범한 성모상처럼 보이는데, 알 수 없는 기운 (?)이 느껴져 한 장 찍었다. MBTI 논리의 T인 내가 순례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을 믿게 되었다.
실상 적외선이니 자외선이니 이런것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기운이나 생각, 아우라의 집합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과학으로 입증가능하겠지 라고 생각한다.
조금 지나자 저녁 미사가 시작되었다. 신부님이 미사에 참석한 순례객 중 두 명을 골라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성경을 읽도록 하셨다. 신부님이 고른 두명은 다름 아닌 피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아주 잘생긴 미남자 독일 순례객이었다.
피터가 먼저 신부님 계신 단상에 올라 한국어 성경을 가지고 어느 구절을 읽으면 될지 신부님과 상의하였다. 우리말로 된 성경으로 피터가 단상에서 성경 구절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순서는 미남 독일 청년 순례객 차례.
이 청년은 잘생긴 외모로 순례길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저절로 이목을 끌어 그런 관심이 귀찮았던 것일까?
이날 이후부터 순례길에서 일정이 겹쳤는지 세 번째인가 길에서 마주쳤을 때, 매번 그냥 지나치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아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자신에게 뭔가 내가 작업(?)을 건다고 생각했는지 단순한 인사말이었음에도 퉁명스런 얼굴로 쳐다보며 짧게 대답하길래, 그 이후부터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모른척했던 청년이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이렇게 한국어와 독일어로 각각 성경 낭독 시간을 가진 후, 본격적으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 끝에는 순례객 축복 기도도 있었고,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서 아래 사진 속 예쁜 조약돌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미사 참석하여 축복도 받으시고 아래 사진 속 예쁜 조약돌도 무료로 받길 바란다.
조그마하고 귀여운 조약돌에 노란 화살표 표시가 너무나 마음에 쏙 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그다음 날 찍어본 사진이다.
미사가 끝난 후 피터와 계속 성당 구경을 했다. 피터가 이 성당을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피터 독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도 미사를 보고 난 후 마음이 너무나 평화롭고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성당에서 상서로운 느낌, 왠지 모를 영험한 느낌을 받았다.
피터에게 "피터, 이 성당 왠지 모르게 신비롭고 영험한 느낌이 들어. 화려하지도 않고, 위엄 있지도 않지만. 나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 라고 말했다.
그러자 피터가 놀란 눈으로, 동그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며 "진짜 누나? 여기 성당에 성체 모셔져 있잖아." 라고 알려주었다. 피터가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밤 아홉시 무렵이었는데, 하늘이 정말 사파이어 보석처럼 맑고 밝고 깊었다. 달도 휘영청 밝은데, 달이 밝으면 별이 대게는 잘 보이기 힘든데, 별도 같이 많이 보였다. 밤공기도 청명했다.
돌로 지어진 소박한 성당에서 풍기는 단단하고 중심 잡힌 느낌, 영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이 짙푸르고 휘영청한 깊은 밤과 너무나 어울려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피터에게 부탁해 성당 앞에서 사진 타임을 가졌다.
마을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소박하지만 영험한 느낌의 성당. 마을 전체에 뭔가 알수 없는 영묘한 느낌이 감돌았다. 피터에게 이제 뭐 할거냐 물어보니, 글쎄 피터는 이 오밤중에 다시 걷는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날 밤 달이 밝아서 길도 밝고, 밤에도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라고 물으니 괜찮아 달이 밝아서.라고 피터가 담담히 그러나 굳은 의지의 목소리로 말했다. 웬만하면 말리겠는데, 이날 정말 달이 밝아 밤인데도 그다지 어둡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밤의 어둠이 주는 또 다른 묵상 (?)을 피터가 원하고 있는 것 같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조심히 걸으라고 배웅해 주었다.
이후 혼자 마을 구경을 하다가, 마을이 너무 작은 마을이라 딱히 구경할 것도 없어서,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산장 느낌의 호텔 옆에 딸린, 마을에 딱 한 곳 있는 기념품 샵 안에 구경이나 할 겸 들어갔다.
목걸이나 팔찌, 엽서, 지도, 컵 등등 다른 기념품 샵과 파는 품목은 어느정도 비슷했는데, 조금 눈에 띄는 물건들이 있었다. 묵주 목걸이도 이곳 오세브레이로에서만 파는 묵주 목걸이가 있었고, 또 독특하게 이곳 기념품샵에만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음반이었다. 갈리시아 출신 연주자들의 음반을 판매중인 것 같았는데, 백파이프 음반도 있었다.
특히 카를로스 누녜즈 라고 이름이 적혀있는 백파이프 연주 녹음 음반이 너무 눈에 띄어서 두장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유명 백파이프 연주자였다.
백파이프는 스코틀랜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스코틀랜드랑 이곳 스페인의 최북단 서부 갈리시아 지방이 서로 백파이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이 예전 켈트 문화 교류 지역 중 한 곳이라는 것을 건축 뿐 아니라 백파이프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실내에서 들으면 너무나 시끄럽지만, 탁트인 야외에서 들으면 아주 먼 곳까지도 선율이 울려 퍼져 전달되는 아름다운 공명의 백파이프 연주. 나는 백파이프 연주를 좋아하는데, 이곳에서 백파이프 연주 음반을 살 수 있어서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백파이프 연주 음반을 파는 곳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세브레이로에 내가 또 올 일이 있을까? 이 깊은 산속 마을까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기념품도 한두개 더 사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저녁식사를 하러, 유일하게 문을 연 마을에 딱 한 곳 있는 산장호텔 1층의 식당으로 향했다. 벽에는 이곳의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많이 걸려있었다. 이곳에 머무는 순례객들은 오늘 밤 이곳에 전부 다 집결한 느낌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저녁이면 난방을 때서 조금 따뜻해져 있을 줄 알았더니...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낮보다 실내가 더 싸늘해져 있었다.
난방을 튼 것 같기는 한데, 복도 계단에 있는 라디에이터만 조금 피식 거리며 온기가 나오고 있었고, 방 안은 완전한 얼음장이었다. 방안에 있는 라디에이터는 장식용인지 아예 작동을 안 하고 있었다. 방안의 라디에이터는 중앙 통제식인지 버튼도 없었다....
그야말로 극기훈련인 밤이었다. 실외보다 더 추운 실내(?)가 있을 수 있구나... 피터가 왜 굳이 깊은 밤에 순례길을 더 걸어서 다음 마을로 넘어가 자려고 했는지 이런 이유도 나름 한몫 한 것일까(?) 약간 이때 이해가 됐다.
내가 가져간 침낭은 겨울까지 대비가 가능한 필파워가 매우 높은 가을 겨울 동계용 침낭이었는데, 구스 패딩에 양모 양말 두겹을 신고,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침낭 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도, 온몸이 돌에서 나오는 강력한 한기로 덜덜 떨렸다. 너무 추우니까 잠이 오지 않았다. 실내인데도 침낭 밖으로 내놓아져 있는 코가 추위로 빨개지고 시릴정도였다.
11월 중순인데, 아직 12월도 아니고 1월도 아닌데 이렇게 추울 수 있구나.. 너무 추워 잠도 안 오고 무려 실내인데도 추위로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11월 중순까지는 난방을 안 틀어주고 하순은 되어야 숙소에서 난방을 틀어주는 것인가 싶었다.
산속에 위치한 돌집이 내뿜는 11월의 강력한 한기에 덜덜 떨면서 자는 둥 마는 둥 뒤척거리며 한숨도 제대로 못 자고 이날은 이렇게 덜덜 떨다가 날 밤을 꼴딱 새웠다.
여름의 오세브레이로 돌집은 시원하여 그야말로 피서가 가능하겠지만, 겨울의 오세브레이로는 강력한 한기의 혹한 훈련을 해야하는 곳이니, 계절에 따라 이곳 숙소에 머물지 다음 마을까지 갈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다음편은 아름다운 사모스 수도원 기행으로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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