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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Day4&5. 빰쁠로나를 벗어나 용서의 언덕을 거쳐 뿌엔떼 라 레이나 까지스페인 2021. 10. 6. 01:40
삼일째에 빰쁠로나에 도착해서 공공 알베르게에 머무른 날, 대략 43만원 어치 즉 300유로를 도난당한 후, 공공 뮤니시팔 알베르게에 대한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사실, 그냥 적선한 셈 치고 마음속에서 떨쳐버리려고 했지만, 하루종일 문뜩 문뜩 우울한 기분이 자꾸 올라와서, 이대로 길에 올라서는 안되겠다, 빰쁠로나를 이렇게 안좋은 기억으로 그냥 떠나버리기엔 아쉬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시에 대한 기억을 희석시키고자 뮤니시팔 알베르게 말고 사설 알베르게에 가서 좀 편한 곳에서 마음을 추스리며 하루 더 쉬어야 겠다 마음을 먹고 사설 알베르게 까사이바롤라 알베르게로 옮겼다.
까사이바롤라 알베르게는 작지만 굉장히 깔끔한 숙소였고,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하룻밤에 십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시설이 새것에 가까웠는데 매우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미토리 방으로 들어가니 신기하게도, 생장에서 같은 방에 머물렀던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를 여기서 다시 마주쳤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다. 나와, 한국 언니오빠 부부와, 그리고 침대에 짐은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은 다른 일행 이렇게 오늘밤은 한방에 세팀이 머무르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주비리 알베르게에서 진드기에 물린 후로 문뜩 문뜩 너무 너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한국인 언니 오빠에게 진드기에 물려서 가려워 미치겠다 ~그 말을 하니, 오빠가 계피 스프레이가 진드기 퇴치에 직빵이라며 계피 스프레이를 내 침낭과 옷과 배낭과 그리고 그날 배정받은 도미토리 침대 매트리스에까지 고루고루 뿌려주었다. 너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내가 진드기에 물려서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한국인 언니 오빠를 안 만났으면 계피 스프레이가 진드기에 직빵이라는 것도 모르고 고생하며 넘어갔겠지 싶었다.
한국 언니오빠 부부는 캠핑 도사인 것 같았다. 캠핑 장비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미치겠다고 하자, 가방 부피를 줄이는 법, 가방 안에 물건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등도 친절히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캠핑 크루(?) 같은 동호회 모임을 오랫동안 한 것 같았다. 너무 너무 고마웠다.
침낭도 너무 부피가 컸었는데, 침낭을 넣는 쌕 가방이 압축 기능이 없어서 가방에서 부피를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침낭이 너무 커서 가방을 잘 못 닫겠다고 말을 하니 오빠가 자기 부부는 안쓰는 쌕이 하나 있다며 여기에 침낭을 넣으면 부피가 확 줄어들 것이라고 침낭을 넣는 시연을 보여줬는데, 정말 침낭 부피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언빌리버블 이었다...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사실 침낭이랑 여러가지 장비들을 출발 전에 급하게 인터넷으로 받아 출발해서, 준비가 좀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언니 오빠 부부가 나한테는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았다. 같이 걸으면서 있었던 이야기 하며 그냥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을 뿐인데도 그 대화가 혼자 순례길에 오른 나에겐 크나큰 정신적인 지지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언니 오빠 부부로부터 여러가지 이렇게 도움도 받았으니 말이다.
빰쁠로나에서 돈 도난의 안좋은 기억을 안고 도망치듯이 서둘러 떠나지 않고, 이렇게 다시 하루 다른 곳에 묵으며 마음을 추스리려고 했는데, 하늘이 그걸 어찌 알고 이 알베르게에서 언니 오빠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전화위복이 되었다. 하룻밤 그렇게 쉬니 다시 훌훌 털고 다음날 아침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여섯시 경인데 언니 오빠 부부는 벌써 일어나서 준비를 다 마친 것 같다. 역시 빠르다. 한국인들의 스피드는 나도 한국인 이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여유부리는 나는 무늬만 한국인 인 것 같다.
언니 오빠 부부와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식빵 한조각을 간단히 먹고, 언니 오빠 부부는 나보다 한 10분 정도 먼저 출발하고, 내가 그 뒤를 곧장 따라갔다.
밖에 나오니 일곱시가 다되가는데 아직 캄~캄~ 하다. 까사이바롤라 알베르게에서 묵으면 좋은 점이 알베르게 앞 길로 그냥 쭈욱 내려가면 그게 까미노 순례길이라서 너무 편했다.
원래 도시 안에는 순례길 화살표 표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갈 때 제일 길이 헷갈리는데, 이 점이 너무 좋았다.
알베르게 앞에 있는 길을 따라 성벽 밖으로 나가니 아주 깔끔한 공원 같은 길이 나왔다. 풀도 나무도 간밤에 비에 젖어 공기가 무척 싱그러웠다.
공원을 따라 걸어가는데 한무리의 사람들이 줄지어서 깃발 같은 것을 들고 지나갔다. 난 종교가 없어서 뭔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성당 미사 끝나고 나오는 행렬로 추측됐다.
이 깜깜한 밤 같은 아침 시간에 저렇게 행렬을 하다니, 다들 일찍 일어났을테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 시수스 메노르 마을을 지나서 계속 길을 향했다. 시수스 메노르 마을 입구에 아주 정갈해 보이는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들어갈수 있다 가보았더니 잠겨있었다... 아쉬웠다.
오늘 일정은 용서의 언덕을 지나는 길인데, 다들 순례길 이야기를 할 때 이곳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해서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어떤 곳일까?
꽤 한참을 걸어가니 이제 정말 시골길 외곽 지역이 나왔다. 이때가 아침 아홉시에서 열시경 이었던 것 같다. 날씨가 조금 흐렸다. 다만 덥지 않아 시원했다.
벽에는 이렇게 응원 문구가 써있었다. 빰쁠로나를 나와 용서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드니 정말 진짜로 순례길에 점점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지금까지는 약간 실감이 안났었는데 말이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써있었는데, 옆에 벽화를 보니 더 뭔가 마음이 찡~했다.
용서의 언덕에 점점 다가갈 수록 여러가지 팻말(?) 들이 나왔다. 올라가는 길에 귀여운 종을 발견했다. 좋은 바이브, 좋은 기운을 위해 기도하며 울리세요 ~ 라고 적혀있었다. 그날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어서 인지, 종이 왠지 외로워 보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길래, 나도 다가가서 소심하게 한번 살짝 종을 건드려 보았다. 종 소리가 .... 귀엽다. 좋은 기운을 얻었는지는 미지수 (?) 이지만~ 어쨌든 무사히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까지 도착했으니 좋은 기운을 얻은건가.. ?
그리고 길 곳곳마다 소원탑이 많다.......... 다들 기도하고 싶은 소원이 많은가 보다.
나는 순례길에 오르기 전 마음 속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이 뭉쳐서 뭉탱이로 꽈리를 틀고 있는 걸 억지로 외면하고 누르면서 살아왔었는데 그걸 이번 순례길을 걸으며 다 훌훌 털어버리고 삶에 감사하는게 이번 순례길의 목적이자 소원이었다.
그냥 삶에 감사하는 것.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긍정적인 척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외면해온 나의 감정들과 온전히 마주하고,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걸 무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잊고 훌훌 털고 가볍게 let go 그런 것이다.
걸으면서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겼다.
용서의 언덕이라고 하는데,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역사가 있는 걸로 대충 알고있다. 용서의 언덕이라고 하니 내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할 꺼리는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처음엔 누군가 또는 환경을 용서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그 당시만 좀 성인군자(?) 처럼 분위기에 휩싸여 용서한다 할수는 있어도 조금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와 그게 지속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까미노에서 조금 깨닫게 되었다.
마음을 억누르지 말고, 마주하고, 위로하고, 털어보내는 것... 기억에서 삭제하는 것..... 그랬었지 하고 텅빈 마음으로 홀가분해 지는 것. 또는 그게 잘 안된다면 자기 자신을 너무 다그치지 말고 좀 너그럽게 시간을 더 주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진정 좋다는 걸 조금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세속적인 세속인이라서 아직도 감정을 잘 다루기 어렵지만 말이다. ㅋ
까미노를 다 마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뭐 비슷한 사람인 것 같지만 ㅋㅋ .... 어쨌든 까미노 전 보다는 쪼~금 더 성숙해졌다고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용서의 언덕에 도착했다. 와............. 정말 전경이 좋다. 안개가 걷히면서 풍광이 매우 멋졌다. 탁~~ 트인 이곳에 오르니 절로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뭔가 훌훌 털어버릴수 있을 것 같았다.
용서의 언덕에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고, 다소 붐볐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타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같이 간 언니 오빠 부부가 있어서 언니 오빠 부부가 사진을 찍어줬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얼굴 들어간 사진은 한장도 못찍을 뻔 했다.
원래 눈치보며 대기타고 쏜살같이 가는 그런걸 잘 못하기 때문인데........ 또 하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 생겼다.
바람이 꽤 세게 불었는데, 이곳이 바람이 많이 부는 장소인가 보다. 스페인에는 가메사(Gamesa)라는 현지 풍력회사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산등성이 등성이 마다 줄지어서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라 신기했다.
그런데 저렇게 산에 설치해도 환경에는 문제가 없는건지... 의문이다.
스페인이 태양열/풍력에 너무 의존해서 그런가... 스페인 사람들이 전기도 제대로 못쓰고 일반 가정집이나 알베르게들에 센서들이 죄다 무슨 3초도 아니고 1초마다 꺼지게 초초초 절약모드로 되어있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겪으면서 속으로 잠시였음에도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유럽의 전기 정책을 무작정 한국이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래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하면서 현지 스페인 사람들한테 뒤에서 욕먹는(?) 일이 방 전기 켜두고 방에 아무도 없는데 마지막 사람이 나가면서 그냥 켜놓고 안끄고 나가는 것인데...
잘은 모르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스페인이 전기세나 수도세가 그렇게 싸지는 않은가 보다. 그래서 여기 현지사람들이 그것에 굉장히 민감해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난방도 거의 안해주기 때문에 11월에는 침낭이 가을/겨울용이라 필파워도 엄청 쎄고, 그 침낭 안에 들어가 파카 껴입고, 목도리하고, 모자까지 쓰고, 양말은 당연히 두겹 신고 자려고 누었는데도, 난방을 안해줘서 너무 추워서 자다가 손발이 꽁꽁(?) 얼굴도 꽁꽁(?) 얼어버릴 것 같아 잠을 제대로 못잔 적도 11월에는 꽤 되었기 때문에 ....
한국 사람들이 이런 점은 알아두고 순례길에 올라서 현지 사람들이 민감해 하는 부분은 신경쓰면서 좀 더 조심하면 좋을 것 같다.
용서의 언덕에서 탁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시원~하게 틔운 뒤에 ............ 이제 가파른 자갈길을 걸어서 조심조심 내려가며 푸엔테 라 레이나로 향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하기 전에 오바노스 라는 마을을 지나갔는데 오바노스 마을 주변으로 길도 아기자기하고, 풀도 무성하고, 꽃도 자잘하게 피어있고, 개울물도 졸졸 흐르고 마음이 평화로웠다. 오바노스를 지나가다가 70대로 보이는 스페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할아버지는 순례길을 여러번이나 걸은 프로(?) 이셨는데...
작년에 걸었던 순례길에서 소중한 한국 순례자 친구를 만들게 되었다며 이름은 누구누구 라고 말하며 나에게 매우 기쁜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씀해주시는데....... 할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온화해 보이셔서 기분이 참 좋았다.
할아버지는 하루에 10-15km 정도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일정으로 걷고 계시다며 오늘은 오바노스에서 쉴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쉽게 헤어지고 나는 푸엔테 라 레이나로 계속 향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왕비의 다리라는 뜻인데.......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강이 흐르고 그 위에 튼튼한 돌로 지은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바로 나오는데, 스페인의 석조 건축은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참으로 놀랍다. 석조 건축들이 긴 세월에도 고고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는 파파 헤파라도레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머물렀다. 마을은 조그마하고 조용하고 참~한 분위기 였다. 알베르게에 넓은 뒷마당이 있어서 그곳에 나가 쉬면서 또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였다.
내일은 아예기 마을까지 약 30km를 걸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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