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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티아고 순례길] Day2. 론세스바예스 출발 -> 주비리 도착.
    스페인 2021. 1. 1. 00:52

    < 둘째날 일정은 사진이 없습니다. 열심히 걷기만 해서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없네요~글만 있어요. >  

    아침이다. 부산스럽다. 창문 밖이 밝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넓은 강당 같은 느낌의 공간에 사물함이 딸린 이층 침대를 주르륵 놓은 구조로 침대 앞은 복도처럼 뻥 뚫려있다. 누군가 일어나라고 복도를 지나다니며 계속 깨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산스러움에 엉겁결에 눈을 떴는데, 벌써 7시 40분이다. 알베르게에서 8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얼른 세수만 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거의 8시가 다되어 간다. 

    조금 있으니 네덜란드 할머니 봉사자가 옆에 와서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한다. 그냥 어서 나가야 합니다. 빨리 준비하세요 이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팔짱 끼고 내가 짐 싸고 있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며 압박을 준다.... 시간도 못 지키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당하는 것 같다.

    나름의 사정을 좀 말하자면 어제 12시간 넘게 피레녜 산맥 넘어 거의 알베르게가 문 닫을 시간인 저녁 7시 넘어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으로 들어와서 론세스바예스가 첫 일정인 아직 걸은 적 없는 기운찬 순례객들과 나는 차원이 다른데... (여기 론세스바예스는 스페인으로 들어와서 론세스바예스에서 순례길을 처음 시작하는 순례객들 비중이 높은 편이다. )

    온몸이 미칠듯이 쑤시고 아픈데 하루 더 쉬고 싶다고 몸이 안 좋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듣기로 론세스바예스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그런 거 얄짤없다고 했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인기 뮤니시팔 알베르게이고 론세스바예스가 첫 일정인 순례객들이 많아 꾸준히 순례객들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짐을 꾸리는 동안 계속해서 네덜란드 할머니 봉사자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무서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규칙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게 과연 관용과 용서 사랑의 정신의 순례길을 위해 일하는 봉사자들의 마음가짐인가?? 설마 8시 조금 넘어서 떠나면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할머니 눈에는 내가 그저 몸 성한 창창한 젊은이인데 아침에 농땡이 피우며 늦게 일어난 것으로 보이겠지.. 더군다나 서양인들은 동양인 나이를 못 맞추니 내 나이를 20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겠지 이런 생각하니 정말 억울하다. 나도 20대 초반에는 날아다녔다. 밤 새도 그다음 날 멀쩡하고.. 근데 30대 넘어서고부터는 몸이 말이 아닌 데다가 치료받고 회복 중에 오른 순례길이라 더욱 몸 상태가 일반인들보다 떨어졌는데, 어디 뭐 부러졌다든지 심하게 기침을 한다든지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들은 모를 테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얼른 짐을 싸니 대략 아슬아슬 7시 58분쯤 되었는데, 어제처럼 10kg 넘는 가방의 짐을 전부 다 메고 가다간 순례길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내가 먼저 병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여분의 짐은 부치기로 결정하고, 동키 서비스 이용하고 싶다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어보니, 네덜란드 할머니가 매몰차게, 동키 서비스 부치는 시간이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

    대략 난감 어쩌지 이런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으니 어디선가 할아버지 봉사자가 나타나서 불쌍한 얼굴로 나를 한번 보고 그 할머니 봉사자를 한번 보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그러더니 동키 서비스 부치도록 짐 보관해놓는 창고로 나를 데려가서 짐을 놓게 도와주셨다...... 그 할머니는 같은 동성에 뭐 반감이라도 있는지... 내가 거의 손녀뻘 나이로 보였는데... 남자도 마찬가지고 여자도 마찬가지인데 나이 불문하고 유달리 동성에 까탈스럽고 단호한 기준을 적용하며 매몰차게 굴고 이성한테는 한없이 관용을 베푸는 편파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이 딱 그 케이스였던 것 같다. 그 할머니 눈에는 내가 어제 너무 오래 걸어서 지쳐 보이는 순례객이 아니고, 그저 8시 이전에 떠나야 하는 규칙도 제대로 안 지키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으로만 보였나 보다..... 

    어쨌든 할아버지 봉사자의 도움으로 짐을 맡기고 어제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다가 어제 잠깐 피레네 산 정상 초소 부근에서 보았던 아일랜드 순례객 일행을 만났다. 다들 나이가 젊다. 20대 중반이었다. 이 친구는 말할 때도 노래하는 것 같고 쾌활해서 이 친구 주변에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다만 일행 중에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19세 소녀가 있었는데, 키도 크고 골격도 커서 남자 같은데 신발을 보니 엄청나게 딱딱한 갑피 그것도 무릎까지 올라오는 걸 신고 있었다. 그 신발이 발에 안 맞았는지, 계속 발을 절뚝절뚝거리면서 걷다가 나중에는 샌들을 신고 걷는데도 발톱이랑 뒤꿈치에 피가 나고 발가락에 계속 물집이 잡혀서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일행들이 속도를 맞추며 천천히 걸어주다가 도저히 그 친구가 못 걷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제는 피레네 산맥 산등성이 길을 따라 걷는 일정이었는데, 오늘 일정은 길을 계속 걷다 보니 마을을 빠져나와서 깊은 숲 속으로 계속 걸어가는 길이었다. 특이한 것은 한국의 숲 속과 느낌, 냄새가 매우 유사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 향이 짙게 나고, 바닥에 자갈과 돌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마치 내가 스페인 숲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국 숲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걷는 중간중간에 당이 떨어지지 않도록 슈퍼마켓에 들러서 산 간식거리들, 초코 바, 초콜릿, 곰돌이 젤리 등을 먹었는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열량 높은 걸 끊임없이 먹어도 살이 오히려 더 빠졌다. 하루에 못 걸어도 7시간 이상은 걸었으니 당연한 것인가? 싶으면서도 신기했다. 

     이번 길은 그냥 계속해서 소나무 숲 내리막이었다. 특히 목적지인 주비리에 다다를수록 더 소나무 향이 짙어졌다. 신기한 것은 꽤 높은 경사도의 내리막길 소나무 숲을 계속해서 내려오니 갑자기 마을이 띠용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어김없이 사설 알베르게들이 양옆으로 있었는데 가정집을 개조한 것처럼 보여 시설이 아늑하고 괜찮아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너자 대로변 같은 길이 나오고 음식점과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지나니 대로변 중앙 즈음에 무니시팔 알베르게가 보였다. 알베르게 봉사자분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접수를 해주었고 침대를 안내해주었는데, 침대 매트리스가 꽤나 낡아 보였다. 여기서 첫날 생장에서 만났던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를 다시 만났다. 바로 옆 침대였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주비리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침대는 삐그덕 거리는 철제 침대로 매트리스는 매우 낡아 보였고, 바닥도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학교 체육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알베르게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식당 공간이 나름 넓었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름 새것으로 있어서 빨래하기는 좋아 보였다. 다만 빨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조건하에.. 아니면 계속 눈치 보며 앞사람이 끝나자마자 넣어야 해서 이게 어느 뮤니시팔 알베르게를 가든 불편한 점인 것 같다. 

    아 또 하나 주비리 알베르게는 샤워장이 칸마다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전부 통으로 열려있는 공간이어서 이것도 대략 난감이었다.... 너무 많은 걸 바랬나..? 싶다 (남녀 구분은 되어있다.. 다행히도 ㅎㅎ) 다른 순례객이 샤워하러 들어오면 그 순례객과는 전부 다 까야 할판..ㅋㅋ 보고 싶지 않아도 샤워실이 일렬로 되어있고 지나가는 통로 공간이 좁아서 서로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대중목욕탕 샤워실처럼 되어있었다.

    저녁 여섯 시쯤 무렵에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와 슈퍼마켓에 같이 들러서 장을 보았는데, 나는 별로 산 게 없는데 언니 부부가 맛있는 고기 요리를 해주었다. 내가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드리려고 하자 괜찮다고 사양하시는데 얻어먹기만 한 것이 미안했고 또 너무 고마웠다. 장보고 저녁을 먹으니 벌써 여덟 시가 넘었는데 열 시에는 잠들어야 내일 또 일찍 일어날 수 있으니 대략 정리하고 침대로 갔다. 주방 겸 식당에서 밖으로 나오니 밖이 캄캄하다. 하늘에 별이 간간히 빛나고 있었다.

    침대에 눕자 무언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밥을 먹고 나니 너무 피곤해서 일기고 뭐고 쓸 정신이 없다. 아직 10월 중순이라 그런지 내 침낭이 가을 겨울용이었는데 필파워가 너무 좋아 그런지 침낭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나게 더웠다. 매일 일기를 쓰리라 다짐했었는데, 일기는 커녕 매일 걷고, 밥 먹고, 씻고 나면 잠에 들 시간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대략 25km 정도 걸었고 내일은 팜플로나까지 대략 20km를 걸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물집은 잡히지 않았다, 물집 잡히면 정말 정말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스럽고 물집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데 아직은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그러나 침낭 안이 더워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9시가 지나자 마을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알베르게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다른 순례객들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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