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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티아고 순례길] Day23. 레온에서 비야르데 마사리페까지. 생전 처음본 집채만한 큰 개가 가로막고 있던 길을 돌파하여 무사 도착 !
    스페인 2023. 2. 7. 01:30

    이날 일정 약 23.1km

    [레온 -> 뜨라바호 델 까미노 -> 라 비르헨 델 까미노 -> 프레스노 델 까미노 -> 초사스 데 아리바 -> 비야르 데 마사리페]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조식을 먹으러 마이다와 아래층 식당으로 향했다. 

    조식 식당 입구 (출처: 부킹닷컴)
    조식 식당 , 점심 저녁에는 레스토랑으로 변신 ~ (출처:부킹닷컴)

    조식은 간단한 뷔페 식으로, 크루아상이나 토스트, 잼과 버터, 간단한 햄 종류, 그리고 오렌지 주스와 커피, 우유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아침을 먹은 다음 짐을 싸고 체크 아웃을 하였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호텔 내부 층마다 복도가 다른 느낌으로 꾸며져 있어서 구경하면 좋았을텐데, 내가 머물렀던 층만 보고 떠나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순례길과 닭 설화

    1층에는 수탉 모양 철제 조각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닭 설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산토 도밍고 마을에 순례를 하던 온 청년이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청년을 흠모하게 된 여성이 청년이 자기를 받아주지 않자 청년의 짐에 몰래 훔친 은촛대를 넣어 누명을 씌웠는데... 가족들이 결백을 증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래서 그 청년이 억울하게 모함을 쓰고 교수형으로 죽게 되었는데....

    그 청년의 어머니는 슬픔에 잠겨 순례길을 계속 걸은 다음 산토 도밍고 마을에 다시 돌아왔는데 아들이 살아있다는 계시를 받아 재판관에게 아들이 살아있다고 하니, 재판관이 자기 앞에 있던 닭요리의 닭도 그럼 살아있는 것이냐 하고 코웃음 치자 그 닭이 살아나 노래를 했다는....... (?) 

    매우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그래서 닭이 순례자들에게 좋은 상징이라고 한다! 

    나도 출발 전에 한 장 찰칵 ~ 

    호텔 중정에서 바라본 하늘

    이날은 날씨가 좋았다!

    레온은 1세기에는 로마의 야영지였다고 한다. 레온이라는 이름은 일곱 번째 로마 군단 (The Seventh Roman Legion)이라는 칭호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레온은 로마부터, 무어, 여러 민족이 거쳐간 땅인데 10 세기에 무어 인, 그리고 우리가 익숙히 들어온 카스티야 레온 왕조.... 의 전성기였던 10 세기에서 12 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레온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순례길 표시를 따라 도시 외곽으로 걷다 보면 탁 트인 산 마르코스 광장이 나오면서 그 앞에 매우 멋진 건물이 웅장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데... 파라도르 국영 호텔이다.

    마이다가 파라도르 호텔을 가리키며, 원래는 저곳에 머무르고 싶었는데 현재 공사 중이라서 닫혀있다고 알려주었다. 레온은 중세 기간 동안 산티아고 데 콤포 스텔라 (Saint -ago Compostela)로 향하는 순례길에서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원래 이 파라도르 호텔 건물은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모나스테리오 산 마르코스라는 이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Monasterio de San Marcos, 현재 파라도르 국영호텔

    이곳은 아라곤 왕조의 페르디난드 2세의 기부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엔 스페인이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카스티야는 이사벨 여왕 그러고 아라곤은 페르디난드... 이 부부 (?) 가 스페인 통합 최초의 카톨릭 군주.... 그리고 나서 16세기 카를로스 1세 때 건설에 착수하기 위해 세명의 건축가가 고용되었다고 한다.

    15세기~16세기 스페인의 찬란한 전성기가 이 웅장한 수도원 양식에서 고스란히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수도원이 이렇게 크고 웅장할 수 있는 건가??  찾아보니 원래 12세기 도냐 산차가 지은 수도원은 이보다 소박한 규모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순례자 병원으로 쓰였다가 이후 순례길을 보호하기 위한 순례길 기사단 본부로 이용되었다가 이후 위에 언급된 페르디난드 왕이 건물에 정교한 장식을 더했다고 한다. 이 웅장한 San Marcos 수도원은 현재는 고급스러운 Parador 국영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파라도르 호텔 중앙
    파라도르 호텔 중앙 부조 (조가비가 많이 보임)

    레온에 다시 한번 방문하게 되면 파라도르 호텔에 머무르면서 스페인 건축양식 및 각종 예술품을 구경해보고 싶다. 

    호텔 내부 회랑 (출처: 부킹닷컴)
    호텔 내부 복도 (출처: https://www.icastelli.net/)
    호텔 내부 회랑 (출처: https://www.icastelli.net/)

     

    다음에 꼭 파라도르 호텔에 묶어보고 싶다 ~ 생각하며 계속 길을 걷는다. 

    호텔 앞을 죽 걸어가면 베르네스강 위에 놓여진 16세기 석조다리 베르네스가 다리가 나온다. 

    베르네스가 다리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아침 10시경쯤 되자 호텔을 나설 때보다 날씨가 더 상쾌하고 화창해졌다. 

    다리 위에서의 경치가 멋지길래 마이다 한 장 찍어주고, 나도 한장 찍었다~. 순례길을 한지 한참 지났는데도 사진을 보면 그때의 경치와 기억, 햇빛, 날씨, 냄새 (?) 등이 떠오르는 게 신기하다. 이래서 여행 다닐 때 사진을 열심히 찍어야 하나보다. 정말 남는 건 사진이다.  

    베르네스가 다리위에서 마이다 사진

    다리를 건너 레온을 빠져나와 교외지역으로 나오니 마을 풍경이 다소 허름해졌다. 

    헤름한 레온 교외 마을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큰 나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름답고 멋진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심은지 얼마 안 되어 키 작은 나무들이 많지만 몇백 년 후까지 잘 가꾸고 보존하면 이런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많이 자리 잡겠지..  

    큰 나무가 있던 2층집
    Basílica Menor de La Virgen del Camino

    라 비르헨 델 까미노 마을에 들어서니 엄청나게 현대식인 성당이 눈에 띄었다. 앞에 거대한 철제 브론즈 조각상이 우뚝 솟아있어서 눈길을 끈다. 가운데 성모마리아 상은 좀 위에 올라가 있고, 양쪽으로 다섯 명씩 사도들의 청동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성당 내부

    안으로 들어가니 미사 중인 것 같았다. 마이다와 함께 뒤에 조용히 앉아있다가 한 오 분 후쯤 나왔다. 

    귀여운 샘

     

    계속 길을 걷는데 갈림길이 나왔다. 직진을 하면 길을 따라서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 마을에 도착하게 되고, 왼쪽 길을 걷게 되면 좀 더 논밭길인 한적한 오솔길을 걷게 되는데, 나랑 마이다는 왼쪽길을 택했다. 그런데 이 길을 선택할 때는 몰랐는데, 이 길 위에서 엄청난 집채만 한 개와 마주치게 되었다. 

    갈림길에서 왼쪽을 택한 후 한 한 시간쯤 걸었나, 좁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는데 저~~~ 앞에 걸어서 한 일분 이분 거리 앞쯤에 엄청나게 집채만 한 개가 턱을 괴고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 정말 집채만한 크기였다.

    마스티프 종류는 아니었던 것 같고, 털 길이가 길고 두상이 크고 목 주변 갈기 털이 풍성했던 걸로 보아서 시베리안 오브차카 종류였던 것 같다. 짙은 회색과 갈색 빛 털에 약간 붉은빛의 눈동자의 개였는데.... 멀리서 보고 있는데도 속으로 헉~~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냥 대형견이라고 부르는 개들 크기의 거의 4-5배는 되는 크기였다. 

    엊그제 벼룩의 습격에 이어 이날은 길 위에 목줄도 없이 앉아있는 집채만 한 개를 마주치는 시련이라..... 아아 신께서 나의 담력과 용기를 테스트하고 싶으신 건가. 

    그래서 이게 뭔가 싶어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오솔길 옆은 경작지처럼 보였는데 저 멀리 뭔가 주인으로 보이는 60대 추정 중년 아저씨가 서서 농기구를 집고 땅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매우 평탄한 지형이라 저 멀리서 우리가 걸어오고 있는 걸 분명 그 아저씨도 보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 아저씨는 우리를 쳐다도 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걸어오면서 대화도 간간히 해서 분명 그곳엔 우리 둘과 그 아저씨 그리고 집채만 한 개 이렇게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말소리도 들렸을 텐데.....

    정상적 상황이라면 저렇게 집채만 하게 큰 개를 사람 다니는 길 한복판에 줄도 안 채우고 풀어놓을 리 없고, 설사 이제 11월이라 순례객들이 별로 없어서 길 위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으면 자기 개를 불러서 본인 옆으로 오게 해야 맞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 아저씨는 분명 우리를 본 것이 틀림없었는데 우리를 본체만체 무시하고 있었다. 

    마이다는 그 개를 본 순간 이미 겁을 잔뜩 먹어서 내 뒤로 주춤주춤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걷는데... 한 발짝 한발짝 개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도 마음속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런데 개를 가만히 멀리서 천천히 걸으며 지켜보니, 일단 개가 턱을 땅에 괴고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느긋해 보였고, 나를 은근 안 쳐다보는 듯하면서도 유심히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다만 짖을 것 같은 느낌이나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 또는 우리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가 길 위에 느긋이 앉아있었는데 길을 지나가려고 하는 우리에게 길을 비켜줄지 말지 개가 우리를 보며 약간 기싸움 겸 고민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날 추워서 뚱뚱한 파카도 입고 그 안에 또 여러 겹 옷을 껴입은 다음, 혹시나 길을 걷다가 비가 갑자기 내릴 까봐 우비까지 걸치고, 스틱을 쥐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우비가 좀 사이즈가 커서 걸을 때 휘날리며 걷고 있어 내 원래 몸집보다는 이날 몸집이 좀 커 보였다. 

    좀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개 앞에서 전혀 주눅 들거나 또는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저벅저벅 똑같은 간격으로 천천히 당당히 걸어가자 개가 땅 위에 괴고 있던 턱을 슬며시 들어서 나를 요렇~게 유심히 쳐다보더니 아휴~ 하는 느낌으로 갑자기 투욱 일어나서 주인이 있는 밭으로 슬금슬금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아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까지도 개 주인으로 보이던 그 아저씨는 우리를 힐끔 쳐다보기만 할뿐 자기 개에게도 우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이날을 생각하면 땀이 삐질 삐질 나는 것 같다. 

    정말 살다 살다 그렇게 큰 개는 처음이었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 마을

    드디어 이날의 목적지인 비야르 데 마사리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11월이라 사람이 없는 데다 갈림길까지 두 갈래로 갈라지기 때문에 순례객이 더 줄어든 듯했다.

    산 안토니오 데 파두아 알베르게 마당

    마을 입구에 산 안토니오 데 파두아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알베르게 주인장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페인 부부였다. 주인장 아주머니가 쾌활해 보였다. 체크인을 할 때 스페인어로 말하자 주인장 부부가 스페인어 할 줄 알아? 하며 엄청 기쁜 표정을 짓길래 뭔가 뿌듯 (?) 했다. 

    체크인하고 들어가니 안에 미국인 순례객이 한 명 있었는데,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대학생이라고 하였다. 그 친구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며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라 연달아 기침을 하고 있었다. 10월 중후반부터 스페인이 갑자기 엄청 추워지기 시작하니 가을에 까미노를 하는 사람들은 감기 걸리지 않도록 옷이나 장비들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걸으면 좋겠다. 

    알베르게 저녁식사 샐러드

    1층에는 대략 40여 침상 정도의 2층 침대들이 주르륵 놓여있었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식당 겸 라운지가 나타났다. 그곳엔 부부가 키우는 카나리아도 두 마리인가 있었는데, 노란색 카나리아가 귀여워서 손가락을 새장 가까이 내밀었더니 카나리아가 얼마나 부리로 내 손가락을 세게 콱 ~물던지.. 너무 아파서 뭐야 ~ 어안이 벙벙해져서 화들짝 놀라 새장에서 손을 떼었다. 카나리아가 이렇게 사나운 새였나? ㅎㅎ 물리기 전에는 귀여워 보이던 카나리아가 물리고 나니 이젠 사나운 새로만 보였다. 나만 무는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전부 무는 걸로 보아... 주인만 따르는 카나리아였던 듯 ㅎㅎ 

    다 같이 주방으로 가서 주인장 부부가 저녁 식사 준비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난 후, 식탁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샐러드와 빠에야로 식사를 하였다. 주인장 부부는 우리들이 저녁식사 준비를 도와 식탁 상차림을 같이 준비한 것이 고마웠던지 와인 한병 가지고 와서 다 마셔도 된다고 하며 와인병을 식탁 위에 놓았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와인을 본 다른 순례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걸리며 식사자리의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 해졌다.

    알베르게 저녁식사 빠에야

    이날 먹은 빠에야는 쌀로 만든 빠에야가 아니고 피데우아라는 얇고 짧은 면으로 만든 닭고기 피데우아 빠에야였는데, 닭고기와 완두콩, 그리고 토마토소스가 매우 잘 어울려서 다들 바닥까지 닥닥 긁어먹고, 다 같이 주방을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쳤다. 

    아파서 누워있던 미국인 에이미도 같이 식사를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에이미가 순례길에서 조심해야 된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하길래 왜?? 하고 물으니 예전에 이 근처 아스토르가에서 순례자 실종 살인사건 있었잖아~ 하면서 못 들어봤냐는 식으로 말하길래 너무 놀랐다. 그래서 진짜?? 그랬더니 맞다면서.. 여성 순례자들이 그 근처에서 여러 사건들을 겪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단단히 말해주길래 기사를 찾아봤더니 진짜로 2015년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실종 사망 사건 말고도 여러 다른 사건들도 있던 걸로 보였다. 에이미가 페이스북에 여성순례자들이 운영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혼자 온 솔로 여행객들이 일행을 만들어서 같이 걷는다면서 혹시 모르니 다들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사건이 있었구나.... 하여튼 즐겁게 식사하고 이야기 나눈 후 다시 1층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집채만한 큰 개를 마주쳐서 있는 담력 없는 담력 다 짜내서 무사히 돌파해 한숨 돌리고 났더니 이제 또 순례길 사건 사고 이야기를 듣고나니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모두가 안전하게 여행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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