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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Day24. 비야르데 마사리페에서 아스토르가까지. 아스토르가에서 가우디 궁 야경 감상 및 도시 진입시 만난 변태놈 경찰서에 신고박기스페인 2023. 2. 11. 23:33
이날 일정 약 30.1km
[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sarife) -> 미야 델 파라모 (Milla del Paramo)->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 아스토르가(Astorga)]
아침에 일어나 다시 출발 ~ 마이다가 재촉하는 바람에 평상시보다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11월 넘어가면서 해도 늦게 뜨고 추워지고 아침에도 좀 어둡고 해서 10월에는 아침 여섯시 일곱시면 출발하다가 11월부터 여덟 시 반에서 아홉 시경쯤 출발해 왔는데, 이날은 아침부터 마이다가 짐도 엄청 빨리 먼저 싸고 난 후에 내가 짐을 꾸리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은근 채근하는 눈치(?)를 준다.
마이다의 무언의 채근에 나도 어쩔수 없이 후딱후딱 짐 싸서 알베르게에서 나오게 되었다. 알베르게에서 나오니 날씨는 아침에는 다행히 비가 안오고 화창한 편이었다.
마이다는 잠을 잘잤는지 아침부터 활기차보였다. 피곤한 건 나뿐인가 ㅋ
오늘 지나가는 길에는 마을이 거의 없었다. 한적한 오솔길을 지나자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아스팔트길을 계속 걷자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마을이 나왔다.
오르비고 다리는 스페인의 중세시절 다리 중 하나로 가장 길고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다리가 정말 길게 주욱 뻗어있다. 이마을은 예전에 산후안 기사단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의 성당에서 구호시설도 운영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을 이름에 오스피탈이 붙나 보다.
오르비고를 지나서 산티바네스데 발데이글레시아 마을을 지나가는데 소농장이 갑자기 까꿍하고 나왔다. 아기 젖소들이 너무 귀여웠다.
계속 걸어가자 산토 토리비아 석조 십자가가 나왔다. 아스토르가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이곳 주변은 뻥 뚫려서 먼 곳까지 360도로 볼 수 있었다. 순례길 초반에는 걸어도 걸어도 한참 남은 것 같았는데 이제 레온을 지나 아스토르가에 다다르니 점점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를 지나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온다. 마이다와 함께 미끄러지지않게 조심조심 내려왔다.
내려가는 내리막길 중간 쯤 순례자를 묘사한 브론즈 동상이 나온다. 마이다랑 나랑 동상 옆에서 한 장씩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좀 길게 걷다 보니 이제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아스토르가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조금씩 오다 말다 하며 구름 끼고 우중충해졌다.
자 이제 하이라이트 !!
산 후스토 데 라 베가스 마을이 나오고 이제 이 마을을 나와서 아스토르가로 들어가는 이 길이 걸어서 한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이 길 위에서 변태를 보고 아스토르가에 가서 경찰서에 신고하게 된 썰을 풀어보겠다.
산 후스토 데 라 베가스 마을을 빠져나오면 약간 을씨년스러운 농장 공장 분위기의 들판이 나온다. 존 브리얼리의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서에는 기분 좋은 시골길이라는데...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었다. 계속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길을 따라서 계속 걷게 되는데,
조가비 표시를 따라서 이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점점 도로 높이가 올라가며 언덕길이 된다.
그럼 작은 개울 느낌의 투에르토 강이 나오고 그 위로 아스팔트 길이 계속 나온다. 투에르토 강 위를 지나면 다시 길이 내리막길로 변하면서 내려오게 되고 아스팔트 길 위에 인도가 생겨나는데 길을 조금 걷다 보면 한적한 오솔길로, 즉 아래 그림과 같이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라는 조가비 표시가 나온다.
아래 사진의 저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는 오솔길 진입로 구간이 주변에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아주 한적한데, 여기가 바로 썩을 ~ 변태 놈을 만났던 지점이다.
우리가 저 조가비 표시를 보고서 어 저길로 이제 들어가야 되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조가비 표시 옆에 위에 사진과 같이 나무에 가려진 빨간 벽돌 담장의 아주 허름한 작은 집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길로 확실히 들어서자 갑자기 그 작은 집 나무 뒤편에서 후드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젊은 남자 애가 엄청나게 빠른 걸음으로 튀어 나오더니 갑자기 주변에 뻥 뚫린 아주 잘 보이는 큰 나무 앞에서 서서 얼굴을 안 보여 주려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바지를 훌러덩 내린다???
그걸 보고 나서 0.5초 정도 황당했다가... 너무 급해서 나무 앞에서 볼일을 보려고 하나?? 싶었는데.... 볼일도 안 보고 바지를 훌러덩 내렸다가.... 우리가 아무 소리도 안 지르고 반응도 하나도 안 하고 그냥 계속 걸어서 지나가니까..... 갑자기 바지를 후다닥 올리더니 저 작은 허물어져가는 듯한 빨간 벽돌 건물 뒤편으로 엄청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마이다도 봤나?? 나만 본 건가?? 이 상황이 도대체 뭔지 황당해서 이 황당하고 짜증나고 더러운 (?)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면서 아무 말 없이 계속 걸었다. 마이다가 내 앞에 좀 더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마이다는 못 본 건지 나만 본건지 마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면 하고 많은 나무들에 거기다 주변에 으슥한 곳도 많은데 굳이 우리가 길 위에서 오른쪽 길로 꺾는 그 바로 타이밍에 맞춰서 갑자기 건물 뒤에서 후다닥 튀어나와 우리가 지나가는 그 길 앞에 가장 잘 보이는 큰 나무 앞에 뻥 뚫린 곳에 굳이 서서 바지를 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태가 맞다!!!라는 결론이 났다. 그 허름한 빨간 벽돌 담장 뒤에 숨어서 우리가 그 길로 확실히 꺾어 들어오는 걸 확인한 후 튀어나온 것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마이다에게 혹시 봤어??라고 조용히 물어보니 마이다가 뭘??이라고 멀뚱멀뚱 거리길래........ 아 마이다는 못 봤구나.......... 싶었다. 굳이 내가 본 걸 마이다에게 설명까지 하면서 리플레이하고 싶지 않아서 마이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그 문제의 구간을 지나서 아주 작은 집이 몇 군데 나오고 양 옆으로 옥수수 밭이 나오는데, 계속 걷다 보면 왼쪽에 엄청 큰 공장 같은 건물이 있고, 그 벽을 따라서 계속 걸어야 한다. 이 길도 꽤나 한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지금 구글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텍스타일 섬유 공장 건물이라는데....
날씨도 우중충한데, 인적도 드물고,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말로만 듣던 플래시하고 사라지는 변태까지 만나고 ㅋㅋㅋ 아아~~~ 스펙터클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만나기까지 이 주변에서 저 변태 놈을 만난 순례객이 몇 명일까?? 분명 우리가 여자 두 명인 걸 확인하고 튀어나온 것이 틀림없다. 괘씸하다.
왼쪽에 우중충한 높은 공장 벽을 두고 계속 걸어야 하는 길이 꽤나 긴 편이다. 최소 20분 이상 걸렸던 것 같다. 꽤 길다. 계속 막힌 벽 옆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계속 생각을 했다. 이렇게 그냥 지나가야 하는 일인 것일까??
며칠 전 레온 알베르게에서는 벼룩, 그다음 날 비야르 데 마사리페 가는 길에는 목줄도 안 하고 길막하고 있는 집채만한 큰 개, 이날은 변태 ~~ !!!! 아아 ... 뭐지 ??? 신이 나의 용기와 담력 인내심, 해결사 정신까지 시험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며칠간 계속적으로 빵빵 에피소드가 터지니까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 아스토르가에 도착하면 며칠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서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을씨년스럽던 벽 옆 길이 끝나고 마을 건물이 조금 나왔다. 조가비 표시를 따라 걸으니 왼쪽으로 빠지라고 한다.
왼쪽으로 빠지니 다리 위로 올라가 기찻길을 건너야 했다.
다리를 건너니 마을 건물들이 나오고, 옆에 아스팔트 도로를 두고 주욱 걸어가니 아스토르가로 진입하는 로터리가 나왔다.
아스토르가는 높은 지대 위에 있어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야 도시 기반이 짠~ 하고 나오는 스타일로 되어있었다. 왠지 지대가 높은 걸 보니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성채 도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사진처럼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서 계속 걸어야 아스토르가의 중심 광장이 나온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 어디까지 걸어야 돼? 하며 좁은 길을 계속 걸으니 짠 ~ 하고 아스토르가의 중심부 중앙 광장이 나타났다. 저 앞에 눈에 띄는 아름다운 건물이 시청사인데 17세기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아스토르가 중심부 광장 주변에 상점들이 1층 필로티 아래에 주욱 둘러서 있는데 기념품 가게와 더불어 초콜릿 전문점이 눈에 띄게 많았다. 나, 초콜렛 덕후인데... 변태는 만났지만 아스토르가가 초콜렛으로 유명한가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아스토르가에 초콜렛 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다음날 초콜렛 박물관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토르가에 진입하기 전 그 우중충한 공장벽을 지나갈 때는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더니 아스토르가에 도착하자 다행히 비가 그쳤다. 중앙광장을 거쳐 예약해 둔 호텔로 찾아갔다.
Exe Astur Plaza 호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시청 중앙 광장에 바로 위치해 있었다. 이날 변태도 만나고 30km씩이나 걷고 날씨도 우중충 비 추적추적 오고 춥고 피곤했는데, 위치가 광장 옆이라 더 이상 안 걷고 바로 체크인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좋은 것은 방안에 욕조가 갖춰져 있어서 추운 날씨에 욕조에 물 받아놓고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좋았다.
욕조가 없는 방도 있는 것 같으니 잘 확인해 보고 예약하면 좋을 듯하다. 추천하고 싶은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 짐을 푼 다음 방 안에 앉아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아까 만난 변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만약 경찰에 신고한다면? 당연 나는 내 시간을 빼서 경찰서를 찾아가서 경찰들한테 설명하고, 그 경찰들이 내가 하는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명하고 신고하고 그러면 나는 내 시간을 뺏기게 될 것이다. 내가 나만 생각한다면 당연 그냥 없었던 일인 척 넘어가는 것이 나에게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경찰에 가서 신고를 하고, 그 신고를 바탕으로 경찰들이 뭔가 조치를 취한다면 내 다음 순례객들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더 많아진다면 변태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고, 순례길이 더 안전해질 것이다.
두 갈래길에서 나는 갈팡질팡 하였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없었던 일 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긁어 부스럼 안 만들고 나은 것인지, 나는 변태로 확신하지만 혹시라도 변태가 아니었던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내가 확신하는 것인지, 만약 내가 변태임을 확신하고서도 신고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인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너무 고민이 돼서, 일단 잠깐 고민은 제쳐두고 밖에 나가서 아스토르가를 구경하자!라는 마음이 들어 밖에 나왔다. 어차피 정신적으로 요 며칠 너무 힘들어서 아스토르가에서 며칠 머무를 생각이니, 당장 오늘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마음으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아스토르가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길을 걷다 보니 멋진 건물이 아래 사진과 같이 또 눈에 띄었다.
오른쪽 특이한 건물이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의 궁(Palacio Episcopal)으로 신고딕양식인데, 얇상하고 뾰족한 탑 형식이 위로 쑥쑥 솟아오를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안에 카미노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북부 스페인의 교역로와 군사 순례루트에 대한 기록들과 유물들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려고 보니 이제 오후 두 시경쯤이라 곧 문 닫을 시간이었다.
운영시간은 하절기와 동절기에 시간이 달랐는데, 하절기에는 오후에 8시까지 여는데, 동절기에는 6시 반이면 닫는다.
-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반/ 오후 4시부터 - 오후 8시까지
- 11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오후 4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아쉽지만 밖에서 건축양식만 구경하고 사진 찍고 돌아섰다.
아스토르가를 계속 구경했다. 빗방울이 더 세지면서 이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돌아다니다 보니 오후 다섯 시 반쯤 되자 갑자기 엄청 어두워지면서 금방 밤이 되었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생각해서 돌아가는 길에 주교의 궁 야경 사진을 다시 찍었다. 낮에 본 분위기랑 밤에 보는 분위기랑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확실히 튀는데, 이 가우디 주교의 궁 신고딕 양식 건축물은 약간 동유럽 쪽 느낌이 많이 났다.
호텔로 돌아가서 다시 곰곰이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은 처음인 것 같지 않았고, 괘씸했던 것은, 우리가 딱 그 길로 진입하는 것을 보고 튀어나왔다, 즉 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앞에 무수히 많은 순례자가 지나갔을 터인데, 다 그냥 신고 안 하고 내버려두니까 저놈이 몇 번 해보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 더욱 신나서 계속하는 것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걸어야 하는 일정이 있고, 굳이 순례길에서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이란 것, 나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으니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이놈을 신고하지 않으면 이놈은 계속 저지를 것이다. 신고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호텔 테이블에 앉아서 무슨 바둑 경기 복기하듯이, 구글 지도로 그 장소를 찾아내고, 종이 위에 장소 주소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놈의 몽타주, 얼굴 형태 턱수염을 그리고,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나이대는 몇 살로 보였는지 전부 종이 위에 상세하게 그렸다. 그러고 나서 그 종이를 가지고 아래 호텔 로비로 내려가서 경찰서가 주변에 어디 있는지 물어본 다음 경찰서로 향했다.
한참 한 30분쯤 걸었나,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때가 벌써 저녁 여덜시였다. 우비 입고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경찰들이 한 세 명이 안에 앉아있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자경찰 한명,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경찰 한명, 40대로 보이는 약간 뚱뚱한 털보 경찰 한명 이렇게 세명이 있었다.
여자경찰에게 먼저 가서 신고하려고 왔다고 하니 무슨 일이냐고 하여, 내 스페인어 실력이 경찰서에 가서 유창한 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 설명하며 변태 신고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 일단 종이를 보여주면서 변태를 만나서 신고하려고 왔다고 말하였다.
내가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범인 몽타주까지 그려가면서 최대한 자세히 종이에 적어갔는데, 경찰들은 그 종이를 서로 돌려보면서 그 종이에 적은 내용을 약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느낌이었다. 내가 여기서 경찰들의 태도에 실망해서 그냥 됐다고 나가면 이들은 분명 그냥 뭉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경찰들 앞에 가만히 서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테이블 앞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 자리 잡고 신고서 접수해야만 가겠다는 태도로 완강한 얼굴로 앉아있으니 그제야 경찰들이 자기들끼리 다시 또 수군 수근 댄다.
그러더니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경찰이 다가와서, 신고서 접수할 거야?라고 하길래 신고할 거야라고 확고한 목소리로 답하니 신고서를 가져오더니 하는 말, 그런데 신고하면 나중에 이 신고서 내용의 증인으로서 다시 경찰서에 또 와야 될 수도 있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아니~! 뻔하니 순례객인 걸 알면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 순례길 하다 말고 다시 돌아오는 것 불가능한 거 알면서.. 그래서 내가 아니 나는 다시 못 와. 너도 알다시피 순례 중이라서.라고 말하니.. 경찰이 고개를 끄덕하더니 신고서를 작성하란다... 근데 신고서 양식을 보니 윗부분에 신고자 신상에 대해서 적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웃긴 부분이 있었다. 무슨 미성년자가 신고하는 것도 아닌데, 신고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님의 이름도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신고서 양식이지 ㅋㅋㅋ
그래서 그 경찰을 보고선 아니 무슨 신고자 내 이름만 적으면 되지 내 아빠 엄마 이름도 적어야 한다고??라고 물어보니 그 경찰이 그렇다길래, 아니 무슨 이런 양식이 다 있냐, 전 세계에 어느 신고 양식에 신고자 아빠 엄마 이름을 적어야 하냐??라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더니, 자기도 왜 그런지 이해 안 된다면서 스페인에만 있는 특이한 거라면서 자기도 어쩔 수 없단다 이름만 간단히 적으면 된단다... 도대체 부모님 이름은 알아서 어디다 쓸건대 ㅋㅋㅋ
신고서 양식을 다 적으니, 자기들이 신고서 접수 잘하겠다길래 내가 아스토르가로 진입하는 그 부분이 위험하니 순찰을 돌아달라고 요청하니 그것도 알겠다고 자기들이 돌아보겠단다. 그렇게 약속받고 이 변태 놈을 경찰서에 신고해서 신고박고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거의 밤 아홉 시 반에 되었다. 내 신고로 인해서 이 변태 놈이 잡히게 될지, 순례길이 더 안전해지게 될지 경찰들이 내게 약속한 대로 행동할지 모르겠지만, 후련한 마음이 들었고 얼른 잊어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다른 순례길 관련 블로그들을 찾아보니, 나보다 앞선 시점에 걸었던 사람들 글을 읽어보니 역시나 나같이 비슷한 일을 겪은 순례객들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역시 내가 그때 내린 이놈이 변태 놈이고 처음이 아니고 여러 번 계속했을 것이라는 내 확신이 맞았고 내 이후의 시점의 다른 순례객들 블로그 글들에는 변태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나의 신고로 인해 길이 더 안전하게 되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순례길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맛있는 것들도 먹고 멋진 스페인 유물과 건축물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안 겪었다면 감사해야 한다. 내 앞에 누군가 대신 수고해 주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갈을 놓았기 때문에 진흙 길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 신고해 주었기에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 조가비 표시와 화살표 표시를 그려놓았기에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아스토르가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에피소드를 겪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한층 여러 면에서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감사하게 되었다.
하여튼 호텔로 돌아와서 그래 힘들었지만 신고 잘했어! 하고 그냥 안 넘어가고 더 안전한 순례길을 위해 나서서 혼자 가서 당당히 신고하고 돌아오고 나 참 대견하다!! 하고 셀프칭찬 후 후련한 마음으로 별 시덥잖은 변태 새끼가 날 스페인에서 경찰서까지 가서 신고하게 만드네 진짜 짜증나게 하네ㅋ 에라이 잡혀서 혼좀 나봐라 ~! 하면서 잠에 들었다.
이 다음날에는 초콜릿 박물관에 가서 초콜릿의 역사와 교역지도, 만드는 과정 등을 알아보고 초콜릿 덕후로 지식을 쌓게 되는 (?) 시간을 가진 것을 글로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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