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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Day 9. 로그로뇨(Logroño)에서 나바레테(Navarrete)까지. 싱그러운 포도밭을 거쳐 발이 아파 쉬엄쉬엄 약 13km만 걸었다.스페인 2022. 4. 22. 18:52
이날 일정.
로그로뇨 ->나바레테까지. 약 13km. 중간에 마을 없음.
알베르게에서 일어났는데, 아침 일곱시였다. 침상의 반 정도는 비었다.
이제 10월 말쯤 되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지고 해뜨는 시간도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았다. 짐을 다시 정리해서 밖에 나오니 아침 여덜시 쯤이었는데, 와인으로 유명한 리오하 지방의 대표도시 로그로뇨에서 아무 식당도 안들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지나쳐가는 도시마냥 떠나자니 무엇인가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가서 성당 구경도 하고 기도도 하기로 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어제 로그로뇨로 진입하는 큰 다리 위에서 만났던 브라질 흑인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군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는데, 나이가 50이라고 하셨는데, 군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평상시 운동을 열심히 하신건지 피부가 매우 탄탄했고, 머리카락만 조금 희끗희끗했다.
브라질도 포르투갈과의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카톨릭 신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아저씨도 카톨릭 신자라고 한다. 브라질 아저씨도 성당에 들릴 예정이라길래 같이 성당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침 성당은 너무나도 고요 그 자체였다. 아저씨는 연신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나는 종교가 특별히 있지는 않지만, 성당에 가는 것도 좋아하고 절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스페인 성당은 어디를 가든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이기보다는 그 장식마저도 신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엄숙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성당보다 스페인 성당은 장식 등이 더 엄숙하고 장엄하다. 그리고 색채가 많이 쓰이지 않았다. 주로 어두운 색의 원목이나 금으로 장식된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의 성당들은 여러가지 색채로 그린 벽화들이라든지 색깔을 좀더 화려하게 해놓았는데, 스페인 성당은 조각에 들어간 기교 자체는 매우 화려하지만 색깔을 아주 절제해서 장엄하고 엄숙한 느낌으로 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딱히 종교가 없어도 저절로 기도하고 싶게 된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상이 스페인 성당에 많다. 다른 나라의 성당보다 스페인 성당에서 이 모자상을 많이 본 것 같다.
스페인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듣던지, 아니면 구경을 하던지 하다가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라는 뜻 같다.
en el nombre del padre del hijo y del espiritu santo. 우리나라 발음으로 적으면 엔 엘 놈브레 델 빠드레 델 이호 이 델 에스삐리뚜 싼또. 이 말을 스페인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하게 되면 엄청 많이 듣게 된다.
브라질 아저씨는 성당에서 신부님과 이야기도 하고 더 구경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나는 인사를 하고 성당을 나와 길에 다시 올랐다.
성당 구경하고 나오니 아침 9시 경이라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로그로뇨 도시를 빠져나가 순례길로 다시 올라가는데, 빠져나가는 중간에 차가 다니는 큰 길이 보이고 공원이 나왔다.
그 공원 주변으로 호텔들 및 까페들이 보였다. 그 중 한 까페가 매우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되어있었는데, .. 흠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배가 고파서 좀 더 든든하게 먹고 나서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 까페에 들어가 크루아상이랑 쇼콜라떼 세트를 시켰다.
확실히 호텔 근처 고급 분위기의 까페라 그런지 인테리어가 매우 품격있게 되어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소재, 디자인, 인테리어가 공간에 불어넣는 힘은 대단하다. 한국에도 이렇게 멋진 품격있는 분위기의 까페나 식당 공간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크루아상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파삭 하고 부셔져서 너무 맛있었다. 다만 쇼콜라떼는 조금 너무 걸죽해서 크루아상까지 먹으니 약간 느끼했다. 그래서 스페인 아침식사에 크루아상이 있으면 같이 오렌지 주스를 곁들여서 시키나보다.
길거리 까페에서 크루아상이랑 쇼콜라떼를 먹으면 한 2-3유로 정도면 해결인데, 호텔 근처의 멋진 까페라 그런가 가격은 약 6유로 못미치게 나왔다. 품격있는 공간에서 아침식사를 해서 그런지 기분이 산뜻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아침의 공원이 매우 산뜻했다. 잘 가꿔진 나무들과 수풀, 공원 호수에 둥둥 떠있는 오리떼, 아침이슬 때문인지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깨끗한 공원을 가로질러 걸으니 아픈 발에 대한 생각도 살짝 잊을 수 있었다.
굴다리를 지나 또 포도 경작지를 지나..... 리오하 지방은 포도나무 경작지 천국이다..................
오늘은 13km만 걸어서 그런지 점심시간 조금 지나 2시 반쯤 나바레테에 도착했다. 어제 걸었던 28km의 절반도 안되는 13km만 걸어서 그런지 훨씬 수월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오늘은 이것만 걷기로 정했다.
오늘도 날씨는 화창했다. 나바레테도 돌로지어진 석조양식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중간 규모 이상의 슈퍼마켓이라든지 등은 갖춰져 있었다.
나바레테에 진입해서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나오는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 했는데, 체크인 하려고 문을 여니, 약간 무표정한 인상의 백발 할아버지 오스피탈레로가 의자에 뭐랄까 성성한 눈빛으로 앉아계셨다. 딱히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상대방 표정이 무표정하니 덩달아 약간 긴장(?)되었다.
날씨가 좋아서 배정받은 방안으로 들어가니 창을 통해서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방안이 햇빛으로 데워져서 아늑한 느낌이었다. 다만 작은 방 안에 여러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좀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체크인하고 얼마 안있어서 신기하게 또 한국인 언니 오빠가 체크인하고 들어왔다. 서로 나바레테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알베르게에서 계속 만나는 것도 참 신기하고 인연인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니 오빠도 조금 지쳐서 이날은 조금만 걷기로 정했던 것 같았다. 로그로뇨에서 맛있는 식당에 가서 타파스도 먹고 맛있는 와인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언니 오빠랑 같이 슈퍼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오니, 약 6시 경이었다. 그사이 식당은 식사준비를 하는 다른 순례객들로 붐볐다. 여기 나바레테의 공립 알베르게는 좋은 점이 식당에서 주방을 사용해서 요리를 할 수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방은 좁았지만,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공간은 비교적 널찍하게 되어있었다.
나바레테에서는 성당에 들르지 않았는데, 다시 찾아보니 나바레테 성당이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나바레테까지 갈 일이 있으려나..(?) 아마 인생에 다시 없지 않을까 싶은데, 카톨릭이 종교인 순례자 분들은 나바레테에 들르면 오후나 저녁에 짬을 내서 성당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우리랑 언니 오빠 커플이랑 이후에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 단체 순례객이 체크인 한 것 같았다.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 단체 순례객들은 점잖았는데, 문제는 이분들이 매우 피곤하셨는지 역시나 이날도 돌비 서라운드로 한 3-4명이 코를 우렁차게 고셨다........
그래서 또 잠을 설쳤는데, 아 이제는 더이상 ! 도저히! 안되겠다. 1인실에 가서 혼자 방해받지 않고 푹 자서 어떻게든 이 피곤함을 풀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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