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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Day 13. 벨로라도에서 아타푸에르카까지. 변화무쌍한 날씨 속 묵상하기 최고로 좋은 아름다운 숲속 길...스페인 2022. 4. 27. 17:14
이날 일정.. 약 32km..
=> 발하고 무릎 아파서 멘탈 터져나간 날.. 그렇지만 미친듯한 날씨와 또 날씨를 능가하는 미친 듯이 아름다운 숲 속 길에서 저절로 묵상할 수 있었던 멋진 순례길을 걸은 날.. 부르고스 도착 전 순례길 초중반 일정에서 제일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날..
[벨로라도 -> 토산토스 -> 비얌비스티아 ->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 아헤스 -> 아타푸에르카]
벨로라도에서 아침에 짐 챙겨 출발하는데, 한국인 언니 오빠 커플이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는지, 아타푸에르카까지 이날은 걸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알아보니 거의 32~33km에 달하는 거리였다. 과연 걸을 수 있을지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언니 오빠와 달리 나는 아직도 발이랑 무릎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파스도 붙이고 진통 소염제도 매일매일 먹었지만 효과는 제로였다.
왜 아타푸에르카까지 가냐고 물어보니 며칠 천천히 걸어서 처음에 세웠던 일정보다 조금 뒤쳐지기도 했고 아타푸에르카의 알베르게가 4인 1실 또는 3인 1실 등이라 아늑하고 시설도 괜찮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나도 그럼 아타푸에르카까지 걸어야 하나.... 와 오늘은 죽었구나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15km밖에 안 걸었던 엊그제에는 컨디션이 조금 괜찮았는데, 어제 좀 무리해서 24km를 걸었더니 오늘은 처음부터 발하고 무릎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걸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 언니 오빠랑 속도 차이가 많이 나서 이날은 거의 혼자 걷게 되었다.
이날 대부분 숲 속 길과 흙길을 걸었는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길을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고도가 갑자기 높아지면서 날씨가 변화무쌍하게 변했다. 햇빛이 비추다가, 하늘은 파란데 눈 우박이 내리다가,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서 눈발이 날리다가 등등.... 경험할 수 있는 날씨는 이날 모두 다 경험했던 것 같다. 역시 여름같지 않고 가을날을 숲속 산길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니 단단히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마을을 지나 가파르고 좁은 돌길을 걸어 올라가니 숲 속 오솔길이 펼쳐지면서 조금 더 걷다 보니 전망대 겸 쉼터 같은 곳이 짠 하고 나타났다. 아침에 끼었던 구름이 조금 걷히면서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이날이 10월 말이었는데, 10월 중순까지는 꼭 여름처럼 따뜻하고 더웠던 날씨가 10월 말부터는 햇빛의 강도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아침저녁으로는 매우 쌀쌀해지면서 비가 부슬부슬 자주 오고 날씨가 변화무쌍하게 변했다. 손도 매우 시려서 등산 스틱을 잡을 때 장갑을 꼭 껴야 했다. 우의 & 판초 등도 필수이고 발열내의 & 바람막이 가을 겨울용 경량 재킷을 입는 게 좋겠다.!
쉼터 겸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데,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다................. 너무 고요하다................. 심지어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데 그 누구의 발자국도, 손자국도 없이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괜스레 내가 여기 왔다는 표시를 남기고 싶어서 눈에 살짝궁 내 손바닥을 찍어보았다. 손이 시리다................ 아 뭐지 이 기분?? 나도 모르게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난 이날 직감했다. 아 바로 이날이구나.. 내가 원했던 묵상의 길이...! 오늘은 아무 말도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이 쉼터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길을 걸어가게 된다............ 너무너무 멋진 길........ 오크 나무와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눈이 양쪽에 소복이 쌓인 길을 걸어가는데, 나무 사이사이로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에 쌓인 눈이 바람을 타고 싸악 싸악 공기 중에 흩뿌려지는데, 아주 멀리 앞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순례객 목소리만 간간히 바람을 타고 아련히 들렸다.
만약 여름에 걸은 카미노였다면 이러한 정취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가을 카미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날씨.. 눈 비바람 안개 햇빛을 하루에 모두 경험한 날씨.... 빽빽이 들어선 떡갈나무 길.............. 오카 산( Montes de Oca).....
달그락 달그락, 바사삭 바사삭 나뭇잎 소리, 쏴아 바람소리, 후두둑 후두둑 눈 떨어지는 소리.... 이 떡갈나무 길을 걷는데 무언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었던 첫날과, 오카 산의 눈내리는 떡갈나무 길 이 두길이 부르고스 도착 전 약 십이일을 통틀어 두 날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경치가 너무 멋져서 나도 모르게 동영상이 찍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내 모습도 남기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쩔어있었는데, 경치가 너무 멋져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동영상을 찍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땀에 쩔은 모습이 좀 쑥스럽긴 하지만, 찍길 잘했다.
더 걸어가면 이제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길도 나온다. 아무도 없다... 무릎과 발이 너무 아파서 천천히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뒤로 보이는 순례객도 거의 없는 걸로 보아........ 내가 오늘 이 길의 거의 후반부 순서인 것 같다.
매우 깊은 경사의 오르막 내리막이 한두 번 정도 반복된다. 한번 오르막 내리막을 걸은 후 다시 오르막 내리막이 한번 더 반복되는데... 처음 오르막 내리막은 어찌어찌 해치우는데 이 오르막 내리막이 다시 한번 나올 때 순례객들한테 꽤나 큰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 같다. 아 또 오르막? 이런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모하판 봉우리 -> 페드라하 봉우리 -> 카르네로 봉우리. 약 1000미터가 넘는 오카 산의 이 세 개의 봉우리를 걸으면서 오르락 내리막이 두 번 정도 반복된다.
오늘 정~~ 말 날씨도 길도 스펙터클한데~~라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절로 나왔다. 구름이 잔뜩 꼈다가 비 오다가 눈 오다가 햇빛이 났다가 비가 오다가.... 그러다가 내 앞에 어느덧 한 명도 보이지 않던 순례객이 앞에 있는 저 내리막 길에서 짠하고 보이니까 뭐랄까 다행이다..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이 나오기 전에 산의 거의 정상 부근에 이렇게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나무 조각상들과 벤치가 놓여 있어서, 간식도 먹고 휴식을 취하기 좋다.
올라오는 동안에는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고, 쉼터에서 쉬는 동안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런데 또 한 30분 정도 먹고 쉬는 동안 다시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들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숲 속 길은 거의 다 흙길이었는데, 비와 눈이 와서 곳곳이 진흙탕으로 변했다. 이 산 정상 부근 길에는 웅덩이도 곳곳에 생겨서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곳곳의 물웅덩이를 요리저리 피해가야 했다.
나는 발과 무릎이 아파 미칠 지경이었는데,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는 발이 아프지 않은가 보다. 힘들긴 한데 아프지는 않다고 한다. 아아... 안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난 아파서 미치겠는데 언니 오빠는 안 아프다고 하는 걸 보니 오늘은 영락없이 아타푸에르카까지 걸어갈 모양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쉬면서, 미국에서 온 필리핀 계 미국인 마이다 일행도 만나고,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일행도 만났는데, 그 이탈리아 순례객 중 한 명이 내가 발과 무릎이 너무 아파서 미치겠다고 하니까, 자기는 이번 순례길이 두 번째라 이 길을 잘 아는데, 부르고스에 도착하면 그곳에 스포츠 물리치료(?)실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지난번에 다른 순례객한테 소개받아서 가봤는데 괜찮았으니 너도 가보라고 물리치료사를 추천을 받았다. (스페인 부르고스에서 바르셀로나 선수들 담당 물리치료사한테 물리치료받은 썰은 부르고스 포스팅 때 소개하겠다.)
나랑 언니 오빠는 사실 같이 온 일행도 아니고, 서로 같이 걷자고 약속한 것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서로 마음도 묘하게 맞아서 일정이 전반부에 계속 겹치면서 친해졌기 때문에, 나는 한 발짝 한발짝 디딜 때마다 너무 미칠 듯이 발과 무릎이 아팠지만 언니 오빠 부부와 같이 걷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한번 일정이 달라져서 하루 이틀 간격이 생겨 헤어지게 되면 순례길이 아예 끝나는 마지막까지도 볼 수 없을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다 그러하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이 극대화되는 곳이 바로 이 순례길..
그래서 이날 무리해서 거의 약 32~33km를 걷게 되었는데, 이 오카 산의 봉우리들을 내려와서 만나게 되는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부터 구석기 거석 및 유물 등의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유명한, (한국 국사 역사책에도 구석기 설명하면서 이 아타푸에르카 마을 이름이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타푸에르카 마을까지 남은 약 10km 이때부터가 진정한 고난의 행군이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까지는 비가 부슬부슬 오다가 햇빛 나다가 이랬는데, 오후 네시 반 다섯 시 무렵이 되자 아타푸에르카 마을 전까지 약 5km가 남았는데,.. 갑자기 길 전체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온 밤안개 같았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서 진눈깨비가 섞인 비도 부슬부슬 내렸다. 약간 무서웠다. 왜냐하면 속도가 너무 쳐져서 한국인 언니 오빠 커플은 아예 진작부터 보이지도 않았고, 내 주변에도 아무도 없었으며, 아타푸에르카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찻 길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혹시라도 차와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진흙탕과 비와 이슬이 내려앉은 풀숲을 번갈아 걷다가, 한국에서 신고 온 등산 신발까지 약간 앞 쪽 코부분이 너덜너덜 떨어질락 말락 하기 시작했다. 아아.... 오늘은 정말 여러모로 스펙터클 하구나...........
구석기시대 구석기인의 모습이 그려진 아타푸에르카 라고 크게 써져있는 간판이 나오고 나서 간신히 알베르게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거북이걸음으로 걸어왔던 것 같다. 내 페이스와 내 체력에 맞춰서 걸어야 했는데, 언니 오빠랑 헤어지기 싫어서 억지로, 무리하게 이틀이나 이십몇 킬로 삼십몇 킬로 걸었더니 이제 완전히 발과 무릎이 나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부르고스에 도착하면 당장 이 발과 무릎을 어떻게 병원을 가든 소개받은 물리치료사를 찾아가든 해서 해결하고, 언니 오빠랑은 부르고스까지만 같이 걷고, 그 이후에는 나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욱한 안개를 뚫고 저녁 여섯 시 반쯤 아타푸에르카 알베르게까지 도착했더니 (이날 거의 11시간 가까이 걸었다. 피레네 산맥 넘을 때 그 첫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언니 오빠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발이랑 무릎이 너무 아프고 한 발짝 한 발짝이 고통스럽다고 했더니, 언니랑 오빠가 그럴 때는 냉찜질을 해서 열을 내려줘야 한다고 하며 알베르게 주인아줌마한테 가서 얼음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있다고 흔쾌하게 아줌마가 말했다. 아마 나 같은 순례객들이 많은지, 응급처치용 얼음이 냉장고에 준비되어있는 것 같았다.
엄청난 크기의 얼음 덩어리를 수건으로 감싸서 무릎과 발에 대어주고 한 30분을 있었는데, 염증이 너무 심해서 그런지, 이게 고통이 가라앉고 있는지 잘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타푸에르카 마을이 작은 마을이라 그런가, 이날 날씨가 너무 험난해서 다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머무는 건지.. 이 알베르게에는 오늘 나,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 그리고 벨로라도에서 만났던 한국인 아주머니 이렇게가 순례객의 전부였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10월 말이 되자, 길 위에 순례객이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드디어 부르고스 였다. 부르고스면 순례길의 1/3을 걸은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 이렇게 죽을 것 같고 고통스럽고 당장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매일 드는데 아직도 2/3나 남았다고?? 아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르고스에 도착하면 전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알베르게는 한 방에 2층 침대 하나 싱글 침대 2개가 놓여있는 아담한 방이어서, 아는 사람들끼리 같이 보내기에 아늑하고 참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는데 우리밖에 없어서 그동안 밀렸던 빨래를 편안하게 해치울 수 있어서 좋았다. 어쨌든 너무 너무 아름다웠던 떡갈나무 오솔길을 걸으며 묵상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너무 발이 아프고 힘들었던 최고로 스펙터클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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